스포일러 주의: 본 글은 『블루 아카이브』이벤트 스토리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 ~학원의 불가사의와 고대 주문~』 및 이벤트 스토리 『누구를 위한 예술인가 ~위작과 미학의 행방~』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술의 존재 가치를 정하는 것은 누구일까?
관측되지 못하는 가치는 의미가 있을까?

「누구를 위한 예술인가」는 와일드헌트 예술학원을 배경으로 하는 두 번째 이벤트이자, 비공인 위법 동아리 ‘특수교역부’를 처음으로 선보이는 무대가 되는 스토리이다. 특수교역부는 와일드헌트 특유의 고수위 통관 절차가 만들어낸 밀수꾼 동아리라 보면 얼추 맞는다. 특수교역부의 부장 사쿠라이 미요는 지난 이벤트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에서 까메오 격으로 잠시 등장한 바 있어 묘하게 친숙한 느낌도 준다. 하나 이번 스토리의 핵심은 그녀들이 아니었다. 특수교역부의 기념비적인 첫 등장과 소개는,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2화 분량으로 끝을 맞이한다.
부장인 미요와 자칭 영업실장 와카사 후유, 그리고 우스바 리츠는 이번 이벤트 스토리와 동시에 플레이어블 유닛으로서 픽업된다. 하지만 다소 색다른 활약을 보여주는 미요와는 달리 후유와 리츠의 매력은 심도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특히 리츠는 주연급 조연인가 싶은 수준의 분량이다. 상업 게임의 스토리에서, 그것도 처음 등장하는 픽업 캐릭터의 매력 어필이 부가적인 요소로 밀려난 것이다! 이벤트의 제목부터가 특수교역부와는 무관했음을 뒤늦게 알아챈다. 그리고 하나의 의문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누구를 위한 예술인가?”
예술을 위해 예술을 파괴하는 의뢰인
이야기의 테마를 특수교역부와 무관한 방향으로 비튼 주역은 ‘의뢰인’이다. 그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를 보면 꽤 일리있다. 평론가라는 작자들이 명화의 진품과 위작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에 질린 것이다. 더 깊게 들어가면 평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혹평한 것에 대한 반발심도 있긴 하다. 그럼에도 의뢰인은 작품이 예술적 가치를 통해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 분노했음은 분명하다.


‘예술적 가치’를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분류할 수 있는가 하는 논의는 미루자. 보통 예술적 가치 판단에는 작품의 역사적 배경, 적용된 기술의 맥락과 영향, 그리고 완성도 등이 고려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의뢰인 눈앞의 광경은 가치 판단의 인과가 역전되어 작품이 지닌 명성과 경제적 가치 등이 실체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그 결과란 ‘예술 평론가들이 조악한 위작을 두고 명화라 칭송하는 상황’이자, 그 ‘조악한 위작을 보고자 무수한 군중이 전시관에 몰려들고 감동하는 상황’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의뢰인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작품을 감상할 주제가 못 된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이 겪은 사례가 일반적임을 증명함과 동시에 신념을 관철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게 된다. 바로 이 세상의 모든 명화를 조악한 위작으로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남은 진품은 버려지든 장물로 나돌든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이 예술적 심미안을 갖출 날은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과 행동을 한마디로 대변한다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예술의 가치를 이해하는 세상을 위한 예술이다.”
예술을 위해 예술을 격리하는 아키라
예술학도인 특수교역부 학생들조차 의뢰인의 기대대로 위작을 두고 위작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의뢰인은 위작을 진품이라 속이고 ‘전시회에 걸릴 위작을 진품으로 바꿔달라’는 의뢰를 해온 것이다. 특수교역부가 순조롭게 이번 의뢰를 완수해 냈다면 키보토스에서 하나의 명화가 영원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나 상황을 또 한 번 비트는 인물이 등장하니, 이번 스토리의 또 다른 주역이기도 한 ‘자애의 괴도’ 아키라다.

아키라의 생각은 대략 2년 반쯤 전에 개최되었던 이벤트 스토리 「순백의 예고장」에서도 가볍게 다뤄진 바 있다. 그녀는 예술품이 공공의 것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예술은 의식주와 함께 생존과 직결되는 필수 자원이며, 개인이나 조직이 소유하고 통제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어째서 예술을 저 정도로 높게 평가하는가에 대해서는 거론한 바가 없어 다소 난해한 감이 있다. 굳이 예상해 보자면 예술이야말로 인간이 사고하고 자아를 지님을 증명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라는…. 뭐 그런 철학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만, 지금으로써는 알 방도가 없다.
재미있기도 하고, 또 중요한 점은 아키라가 보여주는 행동적인 결과이다. 예술이 ‘소유물’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그녀는 훔친 예술품을 자신만의 비밀 장소에 보관한다. 이런 아키라의 행동은 자신의 가치관이 무색하게도 예술품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결과로밖에 이어지지 않는다. 그녀 자신 또한 자신의 모순을 인지하고 있지만 딱히 해명하려 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미요는 이를 두고 아키라가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미요가 아키라의 모순을 지적하는 대신 저러한 감상을 표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포인트이다.


아키라는 관객의 곁에 있어야 할 예술품이 관객으로부터 격리되어 지켜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비밀 창고에 보관된 예술품은 누구로부터 격리되어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그건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 즉 ’관객이 아닌 자’이다. 심미안을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예술은 예술이 아닌 가치로 이해되고 유통된다. 작품이 가진 사회적 명성과 경제적 가치, 혹은 이에서 비롯되는 권위 등…. 예술품이 온건히 자신의 가치로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고 통제되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것을 그녀는 용납하지 않는다.
결과 그녀는 ‘이 세상 사람들이 충분히 미학적 안목을 갖추는 날이 올 때까지’ 예술품을 안전히 보관할 것이라 선언한다. 결국 그녀가 말하는 ‘공공’이란, 관객이 될 자격을 지닌 사회를 가리킨다. 누구를 위한 예술인가.
“예술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을 위한 예술이다.”
예술의 가치는 유일하거나 절대적이지 않다
이쯤 되면 의뢰인과 아키라의 관점은 비슷한 노선을 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둘의 작은 차이가 있으며, 다른 행동 양상으로 이어졌다. 의뢰인은 예술 본연의 가치가 이해받지 못한다면 존재 가치 또한 없다고 봤다. 그에 비해 아키리는 사회의 진보성을 부정하지 않기에 예술을 보존한다. 그러나 그들은 예술의 가치가 지닌 의의를 자의적으로 결론짓고 사회로부터 예술적 개념을 일방적으로 격리하려 든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둘 사이에서 명화를 지켜낸 것은 특수교역부장 미요였다. 미요는 사안을 또 한 번 비틀어 사람들에게 진품과 위작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검증을 요구한다. 후배가 기책을 내놓는 모습에 흥미를 느낀 아키라는 미요와의 거래에 응한다. 미요 입장에서 아키라의 승부 수용은 승리한 것과 다름없는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심미안이 내재해 있을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기만 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미요의 목적 또한 간단하다. 의뢰인이나 아키라에 의해 진품이 사라지지 않도록 저지하는 것. 그렇다면 미요는 왜 굳이 이번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 것일까?


진품을 바꿔치기 위해 위작을 와일드헌트 부지 내로 밀반입할 필요는 있으나, 이 작업을 특수교역부가 맡을 이유는 없었다. 아키라에 의해 의뢰인의 속내가 밝혀진 이후로는 굳이 그녀들이 아키라의 범행을 막을 이유 또한 없었다. 결국 특수교역부는 본인들의 첫 무대로 본인들과 전혀 무관한 사건과 환경이 당첨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의뢰를 수주했고, 수행했으며, 비틀었다. 바로 특수교역부장 사쿠라이 미요의 선택에 따른 행보였다.
그녀는 특수교역부장이기 전에 문학 전공의 예술인이다. 미요는 좋든 싫든 자신이 작성한 플롯이 남의 손에 의해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녀가 만든 작품에서는 작품의 존재 의의가 멋대로 정의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니 미요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본다.
“예술은 그 자체로 성립한다. 예술적 가치는 예술을 접하는 모든 사람이 정의하는 것이며, 고로 예술의 존재에 목적성을 따질 수 없다.”
사쿠라이 미요를 통해 바라보는 게임의 방향성
교역과 무관한 이야기의 중심에 특수교역부가 있었던 이유는 미요가 문학 전공의 작가였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미요가 이번 사건을 해결한 이유 또한 그녀가 작가이자 예술가이기 때문이었다. 그림을 두고 일어난 소란에 작가가 개입해 해결했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을 영상과 텍스트가 결합한 복합매체라 해석하면 어떨까. 즉 블루 아카이브와 같은 시나리오 중심 게임이라 쳐보자. 참고로 개발사가 유저의 소비문화를 분류하고 평가한 내용을 스토리에 반영하여 서비스했다는 해석은 여러모로 위험한 주장이므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본인도 이 해석을 따로 논증하지 않을 것이다.
의뢰인은 스토리에 반영된 수많은 요소를 무시하고 게임의 주변 정보에만 몰입하는 유저를 경멸한다. 조악한 각색품에 찬사를 보내는 그들에게는 수준에 맞는 작품이나 어울린다며 대충 만든 표절작을 내놓고 원작은 없애버리려 들었다. 아키라는 게임이 게임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 의해 오염되는 것을 거부한다. 고로 세상 사람들이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꼭꼭 숨겨놓는다. 혹은 사람들 사이에서 게임이 잊히게끔 유도한다.
이번 글만 봐도 알겠지만, 본인은 평소 게임 스토리를 다소 깊숙하게 읽는 편이다. 단순하지 않고 굉장히 중층적 맛. 그러면서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맛! 이벤트 스토리의 말미에서 미요가 디저트를 즐기며 내놓은 감상이야말로 내 취향을 정확하게 꿰뚫는다. 이런 즐길 거리로 넘쳐나는 컨텐츠가 음해성 밈과 성적 컨텐츠로만 소비되고 퍼지는 양상은 그리 달갑지 않다. 그런 탓인지 이번 이벤트 스토리를 감상하고 있자니 묘하게 의뢰인이나 아키라의 태도가 이해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이 작품을 그저 그런 수준으로밖에 즐기지 못한다면, 그런 수준의 작품이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가볍게 웃고 떠들고, 자극적인 맛을 찾는 것이 딱히 죄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미요의 대답은 꽤나 조심스러우면서도 확고한 입장을 내포하고 있다. 정말로 의미 있는 작품이라면, 그 진가를 사람들이 해석하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사람이 몰릴 것이라고. 명품과 짝퉁의 차이는 일반인으로서는 알아채기 어려운 많은 사소한 요소들로부터 비롯되지만, 그 사소한 차이가 시장에서 더 선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고. 설사 당사자가 그 차이를 개념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고로 유저들이 그렇게 즐기지 않더라도, 앞으로도 쭉 자신들만의 '예술적 가치'를 지향해 나가겠다는 다짐으로도 느껴진다. 정말로 미요가 개발진의 마음을 대변했는지 알 방법은 없다. 과거 김용하 총괄이나 여타 관계자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은 가치 지향을 강조한 바는 많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통상 누구나 의례적으로 하는 표현이니 말이다. 지루한 것을 거부하고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이 시대에서 블루 아카이브는 아무도 이해하지 않는 그들만의 방식을 관철할 수 있을까? 나만 가진 기원이 불분명한 이 의문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고, 앞으로 공개될 스토리를 통해서만 무한히 증명되어 갈 것이다.

이번 글은 허수아비 세워두고 때리는 글이 아니라 정말로 이벤트 스토리 감상평입니다.
허수아비를 때리는 건 정말 쉬운데, 허공에 허우적대는 글은 너무 쓰기 어려워요.
이전 글과 마찬가지로 트위터에다 초안을 쓰긴 했는데 게시는 하지 않았습니다.
쓰다 보니 분량이 너무 많아지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이번 스토리에서 특수교역부의 분량이 너무 적었다고 느꼈던지라,
나중에라도 그녀들이 주특기로 활약하는 전용 에피소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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