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본 글은 『블루 아카이브』이벤트 스토리 『불인의 길 ~패션쇼 경호 임무!의 서~』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이해한 자만이 자신의 가치를 정의할 수 있다.
타인의 행복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그러기 위한 자격을 갖추어야.

이번 이벤트 스토리의 주역은 오노 츠쿠요다. 커다란 신장과 소심한 성격에 콤플렉스를 가진 그녀가 어째서인지 파격적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고 패션쇼 런웨이 위를 날아다니는 장면이 「불인의 길」 이벤트의 간판 일러스트이다.
이 친구는 어쩌다가 저런 모습을 하게 되었을까. 언제나 그래왔듯 이번 스토리에서도 '본래 무대에 서기로 한 모델이 퇴장하여, 빈자리를 마침 근처에 있던 적합한 학생이 대체 투입'되는 흐름을 따라간다. 뻔하디뻔하고 안정적인 맛의 클리셰이다.
다만 이번에는 기존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존재한다. 츠쿠요 대신 무대에 올라야 했던 모델의 퇴장 경위가 구체적으로 다뤄진 것이다. 그것도 츠쿠요 본인이 당사자로서 엮여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막상 그녀가 모델 땜빵을 하게 되는 직접 사유로는 작용하지 않는, 그런 부차적인 사건이다.
이를테면 과거 트리니티 사육제의 정의실현부 연극 공연이 있겠다. 당시 공주 역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던 학생이 오는 길에 로켓포에 맞아 실려 갔다! 정도로만 가볍게 다뤄진다. 그렇게 해서 마침 스토리 전반과 대사를 전부 외우고 있던 츠루기가 대체역으로 투입되는 흐름이 완성된다.
츠쿠요의 경우는 어땠는가? 경호 업무 수행 중 디자이너 샤인캣의 작품을 훔쳐 달아나던 헬멧단과 조우한다. 그들과 설전을 벌이고 잠깐의 대화 끝에 무력 충돌로 격화된다. 그 과정에서 옷을 되찾으려던 모델이 직접 인법연구부 측의 유탄에 피탄되어 뇌진탕으로 실려 가게 됐다.
하지만 츠쿠요를 대타 모델로 발탁한 것은 그녀에게 모종의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전혀 관계없다 봐도 좋다. 샤인캣이 츠쿠요를 눈여겨본 시점은 그가 행사장 정문에 처음 도착했을 때이다. 그리고 그의 이번 작품이 마침 '기존 모델'은 소화할 수 없는 양식이었다는 조건이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위와 같은 이유에 따라 별 내용 아닌 듯한 이 장면이, 실은 이번 스토리에서 중요한 역할과 배치 구조를 지닐 것이라는 가정을 세워볼 수 있겠다.
작품의 권리
샤인캣의 작품이 공개되는 이번 패션쇼는 백귀야행에서 개최되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훔쳐 달아나려 한 범인은 망량즈가 아닌 다다이스틱 헬멧단이다. 조직 이름부터가 다다이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그들은 딱 이 장면에서만 한번 출연하고, 그 뒤로는 망량즈에게 난동의 자리를 내어준다.
망량즈도 헬멧단과 마찬가지로 엄연한 점조직의 집합체이다. 굳이 백귀야행 자치구 내 소동에 망량즈가 아닌 헬멧단을 투입한 것부터 묘하게 어색하다. 굳이 이유를 유추해 보자면, 망량즈의 조직 명명 규칙 탓이 아닐까 싶다.
너무 깊게 들어가면 논점이 어긋나니, '다다이스틱'의 어감을 가진 망량즈 조직명은 만들기가 난해하다는 점만 이야기 해두겠다. 다다이즘도 아니고, 다다이스트도 아니고, 다다이스트 같은 '느낌'만 주는 다다이스틱!

고로 절도범들은 '다아이스틱'할 필요가 있었고, 그렇기에 '다다이스틱 헬멧단'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다다이즘이 뭔데? 내가 딱히 예술학이니 철학이니 사회학 같은 교양에 박식하지 않아 정확히는 모른다만, 기존의 관습과 규칙 등을 부정하는 사회 현상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다다이스틱 헬멧단은 무엇을 부정했는가. 디자이너 샤인캣이 만든 '의복'의 관념적 가치를 부정한다. 자! 다다이즘 이야기는 딱 여기서 끊고자 한다. 오늘 쓰는 글에서 예술성이나, 허무주의, 낭만주의 같은 나도 잘 모르는 이야기를 잔뜩 써봐야 주제만 흐려진다.
중요한 것은 헬멧단이 '다다이스틱'하게 작품의 가치를 재정의하고, 이를 강제적 수단으로 실현하고자 한다는 부분이다. 뭔가 '해병문학' 같은 우스운 대사가 결정타를 날린다.
“이 옷의 진정한 가치를 끌어내어 줄 수 있는 곳으로 옮겨 놓을 뿐이다!”

옷은, 작품은 자신의 가치를 추구할까? 옷은,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을까? 작품은 자신의 가치를 추구할 권리가 있었을까? 그렇기에 헬멧단은 작품의 권리를 억압하는 기존의 질서를 다다이스틱하게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결국 '다다이스틱'할 뿐이다. 다다이스틱 헬멧단은 샤인켓의 재산권을 침해한 범죄자일 뿐이기에, 위와 같은 대사도 그저 광인의 괴변으로 취급하고 웃으며 넘어가도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불인의 길」에서는 똑같은 일이 스토리 전체에 걸쳐 재현되고 있다.
츠쿠요의 권리
오노 츠쿠요는 인법연구부에서 어떤 존재였나. 어떤 쓸모가 있었는가. 그 조직에 무엇을 줄 수 있었는가. 인법 연구부에서 오노 츠쿠요는 '무엇'이었는가. 샤인캣은 츠쿠요를 어떻게든 예술 활동의 무대로 끌어 올리고자 한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샤인캣의 논리가 츠쿠요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일종의 가스라이팅 화법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겠다. 그 정도로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며 츠쿠요를 설득한다. 사실 샤인캣의 말들에 아주 큰 거짓이나 왜곡은 없다. 인법연구부의 츠쿠요와, 샤인캣 에이전시의 전속 모델 츠쿠요. 둘의 가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행이다.
샤인캣이 츠쿠요에게 권하는 세상에서, 그녀가 지니고 있던 콤플렉스는 츠쿠요를 최고의 자리로 올려놓는 강력한 무기로 탈바꿈된다. 아아…. 샤인캣 선생님의 그런 깊은 뜻을 몰라뵈고 그저 악덕 사장님 취급을 하고 있었군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꽤 있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만.

하지만 앞서 쓸데없이 길게 말한 '다다이스틱 헬멧단'의 위치 전환. 사실 샤인캣이 츠쿠요에게 하고 있는 작업과 본질적으로 맞닿아있다. 둘의 차이점이라면 결국 의복과 달리 츠쿠요에게는 명백하게 어떠한 '권리'가 존재함 뿐이다. 그리고 이 권리는 '진정한 가치 추구'라는 행위 자체에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 따져 묻게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이 가치 추구는 자기 행복을 거머쥘 수단으로 존재한다. 고로 츠쿠요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추구한다. 추구추구! 어렵게 들릴 수도 있으니 쉽게 정리하면, 애초에 가치 추구가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 보니, 그 수단 중 하나로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뿐이다.
샤인캣은 이렇게 판단했다. 츠쿠요는 행복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을 알지 못한다. 샤인캣의 눈에 츠쿠요는 빛나는 원석이고, 그녀의 모델로서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그녀가 자신의 가르침에 따라 행복을 이해하고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츠쿠요의 가장 본질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길이다.


사실 다들 알겠지만, 샤인캣의 오판이 어디에 있었는가의 문제는 정말 단순하다. 츠쿠요는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다. 이번 이벤트 소리에서 묘하게 계속 반복되는 표현이 하나 있다. "옷이 조여서 불편하다.". 마지막에 츠쿠요 또한 미치루와 재회하여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 결국 츠쿠요에게 이러한 빛나는 가치는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과는 상이한 형태에 불과했다.
츠쿠요가 닌자와 모델 사이에서 고민하고 흔들린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행복을 알지 못해서가 아니다. 단순히 샤인캣이라고 하는 사회적 권위를 잘 이해하고 있던 탓에, 순간적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의심했을 뿐의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짧은 방황 끝에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샤인캣의 권리?
메인 스토리 「오라토리오 편」에서 스바루는 '완전무결한 심판자'가 되지 못했기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왜 갑자기 여기서 스바루 이야기가 나오지? 샤인캣과 스바루는 둘 다 '타인의 행복을 정의하고 길을 제시'하고자 하였으며, '완전무결'하지 못하였기에 실패했다.
지금 글이 오라토리오 편 후기는 아니니 스바루 이야기는 끝. 샤인캣은 어떤 결함이 있었는가? 사실 앞서 말한 '츠쿠요'의 상태값(?)에 오판이 있었다는 점에 비하면 이번 이슈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을 지녔을 수도 있는~… 장면이 몇 번 나오니까 가볍게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샤인캣의 결함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자기들은 라멘에 볶음밥에 교자까지 얹어서 먹으면서, 츠쿠요에게는 곤약국수나 먹인 것이다! 이게 뭔 소리야!
샤인캣 에이전시는 조직에 속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어디까지나 샤인캣이라고 하는 개인의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사조직에 불과하다. 고로 샤인캣이 츠쿠요에게 제공하는 새로운 삶의 규칙은 필연적으로 샤인캣 자신의 사익과 엮일 수밖에 없다.
샤인캣과 츠쿠요 사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면 큰 문제가 없겠으나, 이번에는 그렇지 못하였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짐은 즉, 서로가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고 상호 협력하는 관계를 말한다. 샤인캣은 타인에게로 하여금 행복의 형태를 제단하고 정의하여 제시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샤인캣은 츠쿠요와이 마지막 대화 장면에서 깔끔하고도 후련하게 츠쿠요를 포기한다. 샤인캣은 자신이 타인에게 행복의 형태를 강요할 수 없음을, 무엇보다 스스로 걸어온 길을 통해 증명한다. 또한 츠쿠요는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추구할 수 있는 대상이었기에 흔쾌히 츠쿠요를 떠나보낸 것이다. 혹시 샤인캣의 이 행보가 '얼렁뚱땅 좋은 게 좋은 거' 식 엔딩으로 보였다면, 이러한 맥락이 존재함을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실직고하겠습니다.
제가 서버 열리고 1년간 열린 초반부 이벤트 중 복각까지 놓친 친구들은 안 봤거든요.
그런데 인법연구부 친구들은 죄다 그 시기에 나오잖아요.
그래서 얘네를 잘 몰라요.
그런데 초창기 이벤트들 보통 내용 싸움 내용 싸움의 반복이잖아요,
그 때문에 이제 와서 보기도 부담스러워요.
아무튼, 이번 이벤트 스토리 구성이 뭔가 흥미로웠습니다,
뻔한 이야기인데 뻔하지 않은 구성?
그밖에는, 미치루가 다른 메인 스토리에서 묘하게 3학년 선배의 위엄을 보여주는데,
이번에는 무력하게 츠쿠요를 놓아주려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같은 이야기.
미치루는 자신이 츠쿠요의 새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닐까요,
자신 탓에 츠쿠요가 드넓은 하늘을 날아오르지 못하고 새장 속에 스스로를 가둬둔 것이라면,
새장의 문을 여는 법을 알게 된 미치루는 고민 끝에 츠쿠요를 보내주려는 결단을 내린 듯해요.
헛발질이었지만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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