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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 여우 네 마리, 여우 한 마리 (FOX 소대 | 2,000자 평론)

귀뚜라미_Re 2025. 3. 9. 22:19

스포일러 주의: 본 글은 『블루 아카이브』메인 스토리 『Vol.4 카르바노그의 토끼 편』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와카모 체포는 SRT가 선물한 정치적 이벤트.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경계해야.

블루아카이브 컷신_와카모와 대치 중인 FOX 소대원들

FOX 소대 이야기에는 언제나 조롱이 뒤따른다. 그녀들이 조롱당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형편없는 악당 집단에 가깝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조롱할 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무엇일까? 바로 대상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FOX 소대의 유명한 업적은 와카모를 체포한 것이다. 고로 그들은 와카모에게 집단으로 덤벼서 이겨놓고 잘난척하는 잡배가 됐다.

밈과 주장의 뒤섞임

시간이 많이 흐른 탓일까. 조롱성 논리가 진지하게 FOX 소대를 설명하는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밈은 고려해야 할 많은 요소를 의도적으로 단순화시킨 결과다. 즐기기에는 적합하지만, 너무 심취하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FOX 소대는 정말로 무능한 허풍선 집단일까? 생각해 보면 정말로 '조롱'에 불과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음해는 퍼지기는 쉬우나 정정에는 약간의 수고가 들어간다.

SRT가 지닌 정치적 특수성

SRT는 미국 연방수사국을 모티브로 두고 있는 법 집행 기관이다. 그중에서도 RABBIT과 FOX 소대는 SWAT와 HRT의 역할이다. SWAT와 HRT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겠다. FBI가 보유한 특수부대라는 것 정도만 이해하면 된다. 이런 전술팀은 주로 통상 병력으로 대응하기 까다로운 환경에 투입된다. 그러니 최정예 인원을 선발하여 최상의 장비를 지급한다. 한편 현실과는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FBI는 미 국무부의 산하로 존재한다. 반면 SRT는 방위실이 아닌 총학생회장 직할 조직이다. 총학생회는 회장의 방침에 따라 행정위원회가 의논하여 운영하는 행정 조직이다. 그런데 SRT는 행정위원회의 권한 밖의 기관이다. 필요에 의한 설립이더라도, 그만한 '눈에 띄는' 성과 없이 관료 조직을 설득하기는 힘들다. 그렇기에 SRT는 <재액의 여우>를 체포해서 가치를 증명했다. 와카모의 체포는 SRT의 당위성을 상징하는 성과일 뿐이다. 이건 내 주장이 아니다. 카야가 1장에서 설명한 내용이다.

다른 중범죄자는 왜 안잡아?

일각에서는 <전설의 스케반> 아케미의 체포 과정도 언급한다. 중범죄자 여럿이 날뛰는데도 FOX 소대가 개입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어째서 아케미의 체포에 FOX 소대가 투입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FOX 소대가 없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와카모 건으로 인해 오해받기 쉬우나, SRT 설립의 핵심 취지는 중범죄자 체포가 아니다. FBI가 그렇듯 SRT의 목적은 복잡한 이해관계로 엮인 방첩/테러 사건 추적과 예방이다. SRT의 최초 공개 작전이 무엇인지 떠올려보자. 방위실과 대기업의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WMD 개발 현장 제압이었다.

블루아카이브 컷신_SRT 특수학원의 로고
SRT 특수학원의 로고

특수부대에게 중요한 것

SRT 대원들은 유대관계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2장에 등장한 FOX 소대는 유대가 취약하다. 그 중심에는 빛을 잃고 방황하는 시치도 유키노 소대장이 존재한다. RABBIT 소대와의 일전에서 FOX 소대가 패배한 것도 그녀가 의도한 결과였다. 직접 명시되는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힌트는 여러 곳에 있었다. 유키노 소대장의 지휘 방식이나, 소대원에게 지시하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이런 힌트를 무시하고 사실 관계를 단순화시키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다. 작품이 불친절한 것은 사실이나, 논리적으로 틀린 주장을 해서는 본래 조롱의 취지마저 무색해진다.

특수부대라 하면 초인 집단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특수부대원은 능력의 평균치가 일반 보병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에서 그친다는 연구 결과도 수두룩하다. 중동의 목동지기가 쏜 눈먼 탄에 부대원 전체가 전멸하는 사례마저 존재한다. 특수부대를 초인 집단으로 만드는 것은 막대한 자원과 훈련, 탄탄한 신뢰 관계이다.

2011년 미국은 10년 간의 추적 끝에 한 명의 테러리스트를 사살했다. 작전에 투입된 최정예 대원만 20명이 넘었다. 작전 내용이 공개되자 전쟁범죄와 관련된 여러 논란이 발생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진지하게 '1/20 테러범 모임' 같은 주장을 한다고 해서 똑같이 진지하게 믿을 사람은 없다. 하물며 FOX 소대가 와카모를 체포한 것은 조직 당위성을 증명하기 위한 위력 시범에 불과했다. 이런 SRT의 정치지형과 특수부대의 특성을 무시하면 '와카모 잡았도르' 같은 공허한 조롱만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