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약 한 달 전, 아비도스 대책위원회 편 3장의 이야기가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스토리는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만큼, 새롭고 참신한 전개 방식과 인물의 심리 묘사, 그리고 총 43화라는 무시무시한 분량을 선보였습니다. 사실 43화라는 분량이 "충분하냐" 묻는다면 솔직히 아쉬운 감이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없었던 수준의 분량이라는 점은 사실이니까요.
대책위 편 3장에서는 정말 많은 요소들이 평가의 대상이 되었고, 이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유튜브나 위키 사전만 펼쳐 보아도 스토리, 인물, 연출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한 비판이 가득합니다.
사실 저는 저런 비판에 대해 수용적인 입장은 아닙니다. 아쉬운 점이야 물론 있었지만…. 오늘의 주제는 『대책위원회 편 3장의 완성도』가 아니니까 이 글에서 다룰 일은 없겠네요.
이렇게 의견이 갈리는 대상에는 역시 이번 스토리의 핵심 인물 쿠치나시 유메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메를 직접 보여주는 장면은 정말로 몇 되지 않기에, 잠깐 잠깐 보여준 모습만을 토대로 캐릭터를 해석하려다 보니 발생한 일로 보입니다.
블루 아카이브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학생이 그렇듯, 유메 또한 피상적인 모습과 달리 훨신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물이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행적을 분석하며 어느정도 확신을 얻었기에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처한 상황을 우선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분석 대상 쿠치나시 유메는 아비도스 고등학교의 학생회장이니, 아비도스 고등학교와 학생회의 상황을 우선 정리해보는 단계를 거치겠습니다.
본인이 아비도스 상황에 정통하다(?)고 생각하시면 바로 다음 주제로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아비도스
찬란한 역사
아비도스는 본래 키보토스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자치구였다. ‘가장 오래되고 찬란한 역사’라 자칭하는 학교는 많다. 하지만 아비도스가 진정으로 역사의 패자霸者임은 스토리의 외적인, 즉 메타적 요소를 고려한 결과이다. 아비도스라는 명칭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 자치구는 고대 이집트를 모티브로 하고있다.
70명의 학생회장이 난립한 시기나 셰마타의 등장, 학생회장들의 계곡 등은 이집트 제1중간기의 혼란과 이를 평정한 세마 타위Sema Tawy 멘투호테프 2세Mentuhotep II와 관계된 요소이다.
고대 이집트가 당대 인류 최강의 문명을 꽃피웠듯, 아비도스 또한 그렇게 키보토스의 패권을 쥔 선망의 대상이었다. 풍요롭고 광할한 땅을 기반으로 경제, 정치, 문화, 군사 등 모든 요소에서 다른 어느 자치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묘사된다. 아비도스 자치구의 영역은 그 모티브를 고려하면 적어도 100만 ㎢은 넘어갈 듯 하니, 그 규모부터 다른 모든 자치구를 압도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아비도스가 물려받은 것이 찬란한 영광 뿐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고대 이집트는 북아프리카의 기후 변화에 의해 새로운 환경으로의 적응을 강요받았으며, 자연 재해로 인한 큰 타격으로 쇄락의 길에 접어든다. 과거의 아비도스도 이와 똑같은 상황에 처한 듯하다.
이상기후
기후 건조화로 인해 아비도스는 점차 사막지대로 변해갔다. 고대 이집트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아비도스 또한 초창기에는 이에 잘 대처해 대大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자치구를 재정비했다. 유메가 들고 왔던 『제177회 오아시스 모래축제』 포스터를 보면 행사의 규모가 키보토스 전역의 자치구가 참가하는 정도로 묘사되는데, 이를 통해 아비도스의 위상이 사막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끝내 오아시스가 완전히 말라버리는 사태로 이어졌다. 아무리 키보토스인이라 한들 물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산업 활동은 커녕 기초 생활도 영위하지 못한다. 오아시스가 말랐다는 뜻은 비도 내리지 않고 지하수도 고갈되었다는 의미이다. 자연스럽게 자치구의 사막화는 더욱 가속되며, 자치구의 모든 지역이 존립의 위기를 겪는다.
단순 사막화뿐이라면 어떻게든 대응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훨신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고층빌딩을 포함한 시가지가 모래 사막 속으로 파묻힐 정도의 모래폭풍이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한다. 현실에서는 모래폭풍이나 사막화 현상이 아무리 심하다 한들, 현대식 시가지가 통째로 파묻힐 정도의 재앙은 없다. 기껏해야 고대 유적지가 파묻히는 정도이다.
이런 설명할 수 없는 자연재해로 인해, 키보토스에서 가장 광활한 자치령을 자랑하던 아비도스의 절반 이상이 사막의 품으로 돌아갔다. 이제 아비도스 자치구의 대부분은 모래 속에 어중간하게 파묻힌 흉물스러운 시가지의 흔적과, 함께 희생된 수많은 자들의 원념으로 가득차 있다.
패망敗亡
키보토스 최강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던 당대 아비도스 학생회의 모든 노력과 대응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자치구의 산업 기반이 무너지니 당연히 토착 기업도 같이 몰락하거나 철수하기 시작한다. 삶의 터전과 경제 활동 수단이 사라졌으므로 자치구의 핵심 요소인 학생 또한 급감하기 시작한다. 이를 막기 위해 학생회 측은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
학생회비를 납부할 학생이 사라지니, 본래라면 별 문제도 아니었을 자치구 부채가 갑자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자치구 운영 예산은 이미 고갈되었고,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조세 정책은 꿈도 꾸지 못한다.
부채 상환도 못하는데, 기초 인프라를 유지할 예산이 있을 턱이 없다. 자치구 치안이 동시에 완전히 붕괴하고, 학생회도 이제는 명예직에 가까운 이름뿐인 조직이 되었다. 자치구 학칙이나 학생회 내부 규정 따위는 잊혀진 지 오래이고, 학생회장 선거도 학생회 내의 거수투표로 대체되었다.
총학생회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던 온갖 범죄 조직과 잡범들이 통치력을 상실한 자치구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법적 회색 지대에서 세력을 키워나가던 범죄 기업 『카이저 코퍼레이션』Kaiser Corporation 또한 이 행렬에 합세해 아비도스의 몇 안 남은 시가지에 뿌리를 내린다. 학생수가 두 자리까지 줄어든 아비도스 학생회에 접근한 카이저는 9억 6천만 엔 상당의 대출을 내주고, 3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매월 780만 엔씩 이자를 값도록 종용한다. 그 담보는 폐허가 되어버린 아비도스 자치구의 모든 토지와 시설이었다.
아비도스 고등학교 학생회 체제 최후의 학생회장으로서 임기를 시작한 쿠치나시 유메의 눈앞에는 별관 건물 몇 체와, 벼랑 끝으로 질주 중인 자치구의 절망적 현실뿐이다.
쿠치나시 유메
게임에서 유메는 생각보다 빠른 시기인 대책위원회 편 제1장에서 언급된다. 이름이나 자세한 사정이 밝혀지지는 않지만, 노노미는 그녀를 못미덥고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이후에도 다양한 정보가 은근슬쩍 풀리지만,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대책위 편 3장의 프롤로그이다. 시작부터 방긋방긋 웃으며, 묘하게 시니컬한 태도의 호시노에게 얼토당토않은 계획을 들고 와 함께 가자며 유혹한다. 정말 많은 유저가 이 모습을 두고 ‘가난하고 멍청한 노노미와 화난 세리카 듀오’라는 식의 우스게소리를 늘어놓는다.
매번 사기꾼이나 폭력배들에게 속으면서도 대책 없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유메의 모습에 호시노는 질려한다.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해요! 그래야 저희 학교를 지킬 수 있어요!" 정말 현실적인 의견이다.
당신이 아비도스의 학생회장이라고, 그 책임의 무게를 자각하라며 화내던 호시노의 입장은 피렌체 공화국의 사상가 마키아벨리Machiavelli가 주창한 현실주의Realism와 일맥상통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Il Principe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이상주의에 대한 경계를 주문한다. 이기적인 인간 사회에서 권모술수로 실리를 추구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방법이라 주장한다.
키보토스에서 학생회장은 곧 자치구의 지도자Principe이다. 권력자의 생존에 의심과 경계는 필수적이라는 호시노의 주장은 크게 틀린 것 없는 정설로 보이며, 굳이 500여 년 전 지구 반대편의 사상가가 남긴 고서에 의지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통찰洞察
유메 회장과 신입생 호시노의 첫 만남과, 이어지는 협력. 이 장면은 아비도스의 거리를 배회하는 호시노의 플래시백Flashback 증상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호시노의 불안정한 정서에 잔뜩 겁을 먹으면서도, 동시에 벅차오름을 느끼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 같은 호시노를 유메가 길들이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쿠치나시 유메라는 인물에 대해 이해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기존에도 유메가 기적의 보편성이나 폭력의 굴레 등 심오한 주제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 간간히 있어왔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주장이 그저 막연히 늘어놓는 몽상인지, 깊은 숙고를 통해 발현된 사상인지 애매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앞선장면에서 유메는 호시노를 이렇게 평가한다.
“호시노 쨩, 엄청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잔뜩 찡그리고 있지만, 사실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잖아?
그 얼굴 속에 숨겨진 진짜 호시노 쨩의 본모습은 좀 더 앙증맞은……."
유메는 딱히 논리적인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간의 짧은 대화와 행적을 바탕으로 타카나시 호시노의 본질을 꿰뚫었다. 앞서 이야기한, 호시노의 의심하고 경계하는 사고에는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대의가 담겨 있음을 눈치챈 것이다.
고작 저 장면 가지고 너무 과해석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호시노가 이야기했던 그 시절의 상황, 그리고 유메의 선택과 실천을 좀 더 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유메가 호시노에게 접근하기 시작한 시점에는 아직 아비도스의 학생 수도 두자리 이상이고, 학생회의 임원 또한 남아 있던 상황이다. 그럼에도 유메는 홀로 일하며, 굳이 야인野人이던 호시노를 눈여겨본다. 결과적으로 아비도스 학생회에 끝까지 남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타카나시 호시노 부학생회장이었다.
때로 유메는 호시노에게 근거 없어 보이는 확신과, 스킨십スキンシップ을 동반한 무리한 애정 공세를 펼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겉으로 내보이는 생각과 행동, 그리고 선택들의 이면에는 경험과 관찰에서 비롯되는 통찰이 존재한다.
책임지고 지켜줘야만 하는 후배, 함께 나아가고 성장하는 주체, 직관을 통해 성립하는 통찰,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실천하는 자세. 이 내용은 모두 사랑Loving을 이루는 핵심 요소이다. 쿠치나시 유메의 세심한 관찰력과 직관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이어진다.
이건 딱히 내가 지어내거나 생각한 내용이 아니다. 50년 전, 독일계 미국인 철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 이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을 통해 주장한 사랑의 메커니즘이다.
고래가 그려진 노트를 유심히 지켜보던 호시노를 귀엽게 골려주거나, 타인을 원망하는 호시노를 부드럽게 타이르는 유메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녀의 관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니, 그녀의 자치구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실천 또한 그 비상한 통찰력에서 비롯됨에 틀림없다.
순수
시비를 거는 폭력배들에게 무저항으로 일관하고, 주 90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사기꾼들에게 손쉽게 속아 넘어간다. 100g에 100만 엔이 넘는 광물이 대大 오아시스 밑에 묻혀 있다며 다짜고짜 곡갱이를 들고 땅을 파내는가 하면, 희박한 근거만을 의지하며 있는지 알 수도 없는 유적지를 찾아 사막을 헤맨다.
이렇듯, 유메의 행동과 판단은 현실성과 실리가 결여된 듯 보인다. 하루하루 나빠지는 상황 속에서 유메의 이런 모습에 답답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보인다. 착한 것은 좋은데, 같이 있는 사람 생각하면 좋게만 볼 수 없다는 의견, 꽤 타당하다.
하지만 위에서 나는(또는 우리는) 유메가 비상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본질을 꿰뚫는 능력을 지닌 학생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유메의 행동과 이 해석은 너무나도 상충되지 않는가!
사실 유메의 이런 모습은, 그녀가 처참하고 가혹한 현실을 키보토스의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현재 키보토스의 상황을 굳이 따지자면 절망뿐이다. 어느 정도 절망적이냐면, 자치구를 방위할 병력조차 사라졌음에도, 주변의 어떤 자치구도 아비도스의 토지를 원하지 않는다. 이미 불신과 폭력만이 남아 있는 폐허를 재건하기에는, 쿠치나시 유메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미약하고 무력無力한 존재다.
하지만 그녀는 논리가 아닌 감정으로 판단한다. 논리적으로 다시 되살릴 수 있을 리가 없는 자치구를 위해, 오직 이상 만을 바라보며 즐겁게 실천한다. 만약 그녀가 타인을 의심하고 경계하며, 폭력이라는 이름의 권위를 발판 삼아, 현실 • 논리적 과정을 통해 자치구를 되살리고자 했다면 어땠을까? 그 결과는 굳이 유메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제는 이름을 알 길이 없어진 다른 학생회 임원들처럼, 차갑고 쓸쓸한 결말만이 연상된다.
우리에게 비춰지는 유메의 순수성은, 그녀의 통찰력과 용기의 발로이다. 희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끝없는 어둠 속에서, 실천을 통해 스스로의 사랑을 관철하는 유메의 모습은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반드시 속고 배신당하는 세상에서 결코 대항하지 않겠다는 결의는 그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용기의 증명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가 플라톤Plato의 저서 『국가론』The Republic에는 사추덕Cardinal Virtues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인 용기andreia는 이상의 실현과 연관된다. 외부의 상황과 위협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logos이 가리키는 가치를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태도는 무모함도, 집착도 아닌 용기이다. 유메는 스스로 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고 있었으며, 공공의 선을 위해 불가능에 맞선 용기를 갖춘 인물이다.
이런 용기와 무모의 분별에 대해 다루는 내용은 플라톤의 사례 말고도 많이 있다. 불교의 보살은 중생을 구제救濟하겠다는 대승大乘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실리를 고려하지 않고 고난에 뛰어드는 존재이다. 중생은 곧 불심佛心이 발현한 우주의 모든 존재를 일컫는데, 이를 전부 구제하겠다니! 하지만 불교계에서 이런 보살의 서원誓願은 무지도, 미숙함도 아닌, 지혜와 연민으로 자아내는 용맹이다.
이렇듯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진정한 가치를 위해 고난을 자처하는 존재에 대한 찬미는 쉽게 볼 수 있다. 앞서 호시노의, 혹은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를 부분적으로 차용한 자세는 얼핏 타당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철학과 사상은, 불신과 폭력으로는 오직 단기적인 이익밖에 얻지 못함을 지적한다. 최초 인간의 모습이 이기적일 수 있어도, 먼저 손을 내미는 행위 안에서 자비慈悲와 공존의 장이 실현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유메의 찬란한 순수성은, 끝없는 의심과 배척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21세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포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포용慈愛
내 머릿속 유메의 인상은 학생회실의 창문을 통해 우리를 감싸주는 따스한 오후의 햇살이다. 쓸쓸하면서도 상처를 보듬어주는 상냥한 햇살. 어쩌면 유메를 잃은 직후, 호시노가 학생회실에 들어서기만 해도 해가 지는 저녁까지 플레시백에 갇힌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태양은 영원하다. 꼴랑 50억 년 정도 지나면 차갑게 식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100여년 남짓 사는 미물에 불과한 인간 입장에서는 영원이나 다름없다.
이런 태양은 고대 이집트에서 모든 생명을 보호하는 포근한 힘으로 여겨졌다. 유메의 헤일로는 마름모 형태와 태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렬과 질서, 조화를 의미하는 마름모와 생명의 원천인 태양의 조합. 유메의 자애慈愛는 다양한 형태로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아비도스의 다양한 존재가 아비도스의 재기再起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공공선을 위한 노력이 반드시 공공의 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모두가 당연히 알고있는 원리지만, 나는 유시민 작가의 저서 『후불제 민주주의』에서의 설명을 통해 그 개념을 내면화 했다.
이 책에서 유시민 작가는 ‘주체적 애국이자 객관적 해국 행위를 한 존재’가 그 자체로 미담일 수는 있으나, 관용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음을 시사한다. 저런 사례를 우리가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히틀러나 스탈린Stalin등 수많은 존재가 애국자라는 명예로운 훈장을 받아야 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하지만 유메의 포용은 객관적•실제적 가치가 아닌 본질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물론, 위에서의 불관용과 유메의 관용은 기준이나 접근법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유메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아비도스의 노력을 인정하고 응원한다.
타카나시 호시노는 아비도스의 학생회장을, 그리고 아비도스의 후배이자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주저 않고 폭력을 행사한다. 그 과정에서 호시노는 선배와 후배를 상처 입히고 아비도스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드는 과오를 저지른다.
과거의 아비도스 학생회와 세인트 네프티스Saint Nephthys 그룹은 아비도스의 부활을 위해 도박에 가까운 국토 사업을 진행하고, 뒤이어 타국의 꾐에 넘어가 대량 살상 무기 개발에까지 손을 댔다. 그 결과 아비도스는 완전히 파산해 재기 불능再起不能의 상황까지 몰리게 된다.
하지만 유메는 이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서 인정한다. 그들의 호소할 곳 잃은 죄책감을 품어주는 태양이다.
이런 유메의 포용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 나는 딱히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사랑Agape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죄인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들의 진정한 회개悔改와 함께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의 기회를 제공하는 개념이다.
이렇게 유메의 사랑은 호시노에게, 그리고 대책위원회를 거쳐 네프티스 그룹에까지 닿으며 아비도스의 재생으로 이어진다.
수호
'저주받은 땅 아비도스'는 외부에서 바라보는 자치구의 모습을 정확하게 반영한 표현이다. 사실 외지인이 아니더라도, 고향을 잃고 사막을 떠돌며 고통받은 자들의 원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째서 유메는 다른 곳도 아닌, 이런 지상에 현현한 지옥과도 같은 자치구에 남아서 비폭력과 자애의 실천을 견지하고 있을까?
그녀의 대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모든 노력은 공동체의 질서와 신뢰의 회복을 위한 초석礎石이다. 폭력과 불신으로 아비도스를 재건해봤자, 그 영광은 오래 가지도 못할 뿐더러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아비도스에 그런 가치가 무너져 내린지는 오래이다. 여기서 잠깐, 유메의 몸에는 왜 그렇게 상처가 많을까? 단순히 허당이고 잘 넘어지는, 이른바 도짓코ドジっ子 속성 때문일까?
유메는 호시노와 만나기 전부터 홀로 자치구를 위해 여러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호시노와 관계없이 폭력에는 방어로만 일관하는 유메의 모습은, 그녀가 가진 상처의 흔적과 전혀 무관하지 않으리라.
『IRON HORUS』는 유메가 항상 들고 다니던 방패이자, 호시노가 그녀로부터 물려받은 전술 장비이다. 태양신이자 새벽의 신 호루스는 고대 이집트에서 희망과 회복을 상징한다. 동시에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질서를 보호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역사 깊은 학교에는 자격 있는 자만이 다룰 수 있는 특수한 장비가 보이곤 한다. 백귀야행 소속 백화요란 분쟁 조정 위원회의 부장만이 다룰 수 있는 전설의 마총 『백련』百蓮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아직 백화요란 편의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지 않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백련을 통해 실현되는 정의는 곧 이매망량魑魅魍魎에 휘둘리지 않는 화합과 조화의 가치이다.
이렇듯 아이언 호루스의 방패는 아비도스의 학생회가 지향하던 가치, 즉 공동체의 질서와 신뢰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써 끝까지 남아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치구가 사막에 의해 삼켜지는 그 순간에도 오아시스 축제를 수백 년 간 개최하며 키보토스의 화합을 도모했던 아비도스의 역사는, 어쩌면 유메가 끝까지 지켜낸 가치와 맞물려 있을지도 모른다.
17세기 영국에서 발생한 퀘이커Quakers 운동은 유메의 폭력에 대한 거부와 공동체의 신뢰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내면의 빛Inner Light이라는 가치를 믿는 그들은, 타인의 폭력에도 굳건한 믿음으로 비폭력을 관철하며 상대방을 용서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자발적으로 희생하고 비폭력을 고수하는 자세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렇게 찬란하고 무결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유메는 엄연히 키보토스에 존재하던 한 명의 학생아이이었다.
학생
백화요란 편에서 본인의 실책을 통감하며 자책하는 니야에게 선생이 하는 말이 있다.
“필요하다면 칭찬을 하고, 실수했다면 격려를 해주는 게 선생님이 할 일인걸.”
선생이 생각하는 어른이란, 아이의 실수를 격려하고, 잘한 것은 칭찬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존재이다. 선생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은 학생 아리스 또한 동일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무려 자신을 살해하려 들고, 거의 성공할 뻔했던 리오 회장의 과오를 이해하고 격려하며, 그녀의 노력을 인정하고 응원한다.
호시노의 회상 속에서 유메 또한 같은 모습이다. 호시노의 실수를 격려하고, 호시노의 뜻을 이해하며 응원한다. 급기아는 호루스의 핵꿀밤을 맞고 꺾여버린(?) 선생의 노력마저 긍정해주는, 어쩌면 선생의 어머니(?)같은 존재감마저 풍긴다.
지하 생활자의 중첩Superposition 능력으로 인해 선생 앞에 나타난 유메와의 추억. 총학생회장이 말하듯,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모두와 함께한 추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의 선생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유메와의 추억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유메도 학생이다. 그녀는 키보토스의 초월자 같은 존재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그녀는 기본적으로 허당끼가 있는 불완전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실수는 마냥 귀엽지만은 않았다. 간간히 저지르는 사소하고도 치명적인 실수가 반복된다.
1986년 1월 28일. 본래라면 전 세계의 꿈과 희망을 싣고 날아올랐어야 할 미국의 우주왕복선STS-51-L이 폭발하고 만다. 이 참사로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우주 개척 사업은 축소되고, 이를 생중계로 지켜보던 모든 이들에게 깊은 트라우마가 남는다.
원인은 부스터의 기밀 역할을 하는 고무 O-링의 결함이었다. 전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천재들이 모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발사한 우주선이, "기계 좀 만진다" 하는 사람들은 매일 보는 그 흔하디 흔한 고무 오링 하나 때문에 폭발한 것이다.
부품의 결함으로 인해 참사가 발생했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이것은 휴먼팩터Human factor의 관리 실패였다. 대외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조직 내•외부의 압박과 성과 요구가 누적된 끝에, 평소라면 하지 않을 사소하고 치명적 실수가 이어져 대 참사가 발생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된 사람은 심리적 부담과 만성적 과로 상태에 놓인다. 이는 일상적 주의력의 결핍로 이어지며, 특히 불안과 초조함에 휩싸인 사람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인지능력이 감소해 중요한 요소를 놓치는 경우가 잦아진다.
유메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었고, 그녀의 티나지 않는 불안과 초조는 그렇게 사소한 실수들로 이어졌다. 이런 눈치채기 힘든 신호들이… 유메를 그저 인간답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요소로만 작용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그녀는 대사막에서 아비도스의 참혹한 현실과 함께 운명을 달리하고만다. 고작 나침반 하나를 깜빡한 대가라기엔 너무나도 잔인한 결말이었다.
여담
중첩
차원과 차원, 시간과 시간, 존재와 비존재가 확정되지 않고 뒤섞여 있는 혼돈 영역. 블루 아카이브에서 이 개념은 최종편을 시작해 간간히 등장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번 글의 주제가 『블루 아카이브의 세계관 탐구』가 아니니 깊게 파고들 계획은 없습니다만….
위와 같은 영역은 블루 아카이브가 관측과 확정의 연관성을 다루는 양자 중첩quantum superposition 현상을 적절히 차용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거기에 다중 우주 세계인 만큼, 위에서 말한 차원과 차원의 혼돈은 다중우주의 초공간적 중첩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프레나파테스Φρεναπάτης가 구축하고, 프라나가 재현하며, 지하생활자가 다루는 혼돈의 영역이란, 다중 우주의 시간 차원을 포함한 모든 좌표계의 물질이 관측Wave function collapse되지 않은 채, 하나의 양자적 중첩 상태로 머무는 공간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블루 아카이브는 현실 우주가 아니고, 적용되는 물리 법칙 또한 실제의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트라하시스Atrahasis의 방주가 위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평행 우주를 넘나들고, 실시간으로 피해를 복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때 선생과 학생들 앞에 나타났던 아트라하시스는 허상이었나요?
가짜
호시노는 그토록 바라던 유메와의 재회를 이룹니다.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라 해도, 진실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유메는 호시노의 강한 원망願望이 초공간超空間의 중첩 상태와 상호작용하여 일시적으로 현현해낸 기적이자, 그 자체로 진실된 존재입니다.
비록 우리들의 사실은 아닐지언정, 호시노가 바라던 우리들의 진짜 유메를 그저 소망에 이끌려 나타난 허상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정말로 저 존재가 그저 환상의 실체화에 불과하다면, 왜 굳이 지하생활자라는 존재를 배치하고 프라나가 나람신Naram-sin의 왕좌를 재현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길거리를 거니는 것만으로 과거와 현재의 인지가 모호해지는 호시노에게, '보고싶은 것 보여주기'는 게헨나 만마전의 사츠키만 데려와도 충분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부디 기적의 현현을 고작 자기만족을 위한 잔영 따위로 폄하하지 말아주세요…
마치며
미래
불합리한 세상을 향해 분노하는 방법뿐이던 호시노에게 유메는 희망과 질서의 가치를 전합니다. 호시노가 충분히 성장하기도 전에 유메가 희생되었으나, 선배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후배가 남았습니다.
그렇게 호시노의 아비도스에는 노노미와 시로코, 아야네와 세리카가 합류하며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유메의 죽음은 분명 아비도스에 있어 너무나도 아픈 상처이자 비극입니다. 하지만 거꾸로 유메의 죽음은 아비도스에서 이어지던 비극의 무한한 순환을 끊어냈고, 태양이 떠오르는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고 풀리지 않은 의문도 산더미지만, 유메 학생회장의 의지 아래 하나된 아비도스에게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곧 있을 트리니티 사육제에서의 활약부터 시작해, 아비도스의 학생회가 끝까지 지켜낸 화합의 여명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예고종을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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