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블루 아카이브

[블루 아카이브] 황혼 너머의 진실 (나나카도 아야메 | 인물 추리)

귀뚜라미_Re 2025. 3. 14. 17:38

스포일러 주의: 본 글은 『블루 아카이브』메인 스토리 『Vol.5 백화요란 편』 1장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야메가 느꼈을 불가항력적 열등감의 가능성

블루아카이브_스토리-컷신_백화요란-편_야부키-슈로

야부키 슈로는 화조풍월부의 괴담가다. 그녀의 화술은 타인의 속마음을 들춰내 심리를 압박한다. 이런 수법 탓에 슈로에게는 ‘유동 분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분탕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 그렇게 다들 슈로의 말에는 실체가 없다고 여기며 가볍게 넘어간다.

하지만 그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양치기 소년이 아니다. 마음속 저편에 숨겨져 있던 진심을 끄집어낼 뿐이다. 그런 슈로가 아야메의 ‘감정본심’을 대변하는 장면이 있다. 아야메가 나구사에게 느낀 비루한 감정. 그리고 최후의 절규.

오늘은 이런 정보들을 규합하여 나구사와 아야메의 관계를 유추해 보고자 한다. 근거라고는 작품에 등장하는 대사 몇 줄 정도다. 그래도 나름의 일리 있고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자격'을 고수하는 나구사

작품에서 나구사는 병적인 수준의 가면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은 아야메의 옆자리자격에 합당한 사람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녀가 신뢰하고 따르는 대상은 오직 아야메 뿐이다. 아야메는 나구사가 백화요란에서 활동하게 된 내력과도 관계있다. 회상 장면에 따르면, 그녀의 유일한 목적은 아야메와 함께 하는 것이다.

나구사는 아야메에게 어울리는 ‘완벽한 인물’을 연기한다. 그녀는 아야메의 우수함이 자신의 실체를 숨겨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에게 이 비밀이 드러날까 불안해하면서도, ‘아야메’에게 탄로 날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아야메는 나구사의 진짜 모습을 아는 유일한 존재일 지도 모른다. 이런 가정을 둔다면 나구사의 집착이나 불안 같은 감정을 설명할 수 있다.

문제라면 나구사의 본실력이다. 실제 능력이 우수함에도 본인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이건 가면 증후군 환자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나구사가 생각하는 자격은 3학년에 진학하면서 더욱 높아진다. 이제 아야메의 옆자리는 단순한 동료가 아닌, ‘백화요란 분쟁조정위원회 부부장’의 격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나구사는 아야메의 오른팔로서 완벽한 자신을 거뜬히 연기해 낸다.

태양아야메이 그리는 황혼

반짝반짝거리는 인싸 같은 느낌. 인술연구부 부장 치도리 미치루가 떠올리는 아야메의 인상이다. 이 묘사 만으로 아야메의 캐릭성이 짐작된다. 명랑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 이런 인물 주변에는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다. 나구사 또한 아야메의 빛에 이끌린 수많은 학생 중 한 명이다. 사교성 좋은 아야메가 나구사를 챙겨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실제로 둘의 관계는 양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구사는 아야메와 함께 하는 순간을 자주 추억한다. 상반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성격, 그리고 백화요란에서도 최강의 실력을 갖춘 듀오이다. 나구사는 언제나 아야메를 받쳐주는 보조자 역할을 자처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야메는 파트너가 자신을 동경한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다. 어쩌면 나구사를 챙겨주며 약간의 우월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흔한 풍경이지만, 이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아야메가 나구사보다 우위에 있어야만 한다. 나구사의 실력은 자연스럽게 아야메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아야메가 앞서나가야 할 대상그림자은 언제나 그녀의 바로 곁에 존재했다.

화조풍월부

백화요란 부원이 나누는 대화에는 아야메 부장의 실적이 언급된다. 127번째 단독 분쟁 해결! 나무 위의 고양이 구하기! 백화요란과 음양부는 백귀야행의 학생회 같은 조직이다. 이런 기관의 수장이 사소한 일까지 직접 처리하는 모습은 다소 어색하다. 성과에 집착하는 아야메의 모습은 그녀가 느끼는 불안의 증거로도 해석된다. 나구사가 완벽한 부부장을 연기한다면, 아야메는 그에 상응하는 부장의 능력을 선보여야만 하니까.

아야메는 유카리가 입부하기 직전에 부장직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유카리의 회상 장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아야메가 단독 행동을 고집하는 사이, 후배들은 나구사와 함께 합을 맞추기 시작했다. 문제라면 그 후배들이 작전참모키쿄행동대장랜게 같은 백화요란의 수뇌부라는 점일까.

저 아이나구사는 실력을 너에게 맞춰주고 있을 뿐이야. 너보다 못난 척하면서, 뒤에선 후배들과 함께 널 깔보고 있는 것이 분명해. 다들 저 아이가 부장백련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불안의 씨앗을 누군가코쿠리코가 심은 것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존재하던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불안이 불신을 야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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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자아내고자 하는 것은…… 풍류를 이야기하기 위한 <백물어>

우정과 신뢰, 그리고 원망과 불신

화조풍월부는 마음에 생긴 균열을 파고든다. 곧이어 의심이 확신으로 변모한다. 관계의 역전에서 오는 인지부조화가 열등감을 키운다. 열등감과 불신, 원망과 같은 감정이 그녀 속에 가득 찬다. 내게 이 총을 쥘 자격이 있기는 한 걸까? 아야메는 대답을 얻고자, ‘풍문괴담’을 따라서 대 예언자 쿠즈노하를 찾아 대설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황혼의 신사에서 아야메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코쿠리코의 함정뿐이다. 그리고 이를 나구사가 뒤쫓는다. 친구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구하러 와주었다는 안도와 기대. 하지만 아야메에게 이 상황은 견딜 수 없는 치욕이기도 하다. 하필이면 네가 나를 구하다니!

그녀는 나구사를 원망한다. 그러니 나구사가 뻗는 손을 뿌리친다. 나를 기만한 너를, 내가 먼저 내치리라. 그 방법은 너무나도 쉽다. 황혼에 삼켜지는 마지막 순간, 아야메가 나지막이 선고한다.

나구사, 나는 처음부터 널 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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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전개를 기다리며

이 해석은 근거가 부족하고 허점이 많다. 대표적으로 아야메의 부장직 사퇴와, 이를 곧바로 추격하지 않은 나구사의 행보를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은 가능하겠지만, 이미 지금도 충분히 창작의 영역이다. 그러니 재미로만 보는 것이 좋다.

아야메의 마지막 말이 어떤 의도에서 비롯되었는가. 일반적으로 저 대사는 ‘나구사를 위해 의도적으로 상처 주는 목적’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패턴은 이미 키쿄와 유카리의 서사에 활용됐다. 한 작품에서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진부해진다.

그러니 아야메의 대사는 ‘진심’이어야 한다는 가정은 일리 있다.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이 두려워, 도피를 선택한 나구사와 배신을 선택한 아야메. 이런 뒤틀리고 왜곡된 애증 관계가 ‘진짜’인지는 백화요란 편 2장이 나와야지만 알 수 있을 것이다.